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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마음, 모악산 금산사

  • 작성자플랜아이
  • 작성일 2024.04.29
  • 조회수70
미륵의 마음, 모악산 금산사<br/>	1,400여년의 긴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는 곳이 있다. 그 곳은 전북의 명산, 모악산에 자리 잡은 금산사金山寺다. 생명을 향한 자비심에서 시작된 진표율사의 미륵신앙은 금산사를 희망의 상징으로 만들어 주었다. <br/>국립전주박물관은 금산사와 함께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기념하여 미륵신앙의 성지로 지역민을 위로하고 희망의 안식처가 되어준 모악산 금산사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금산사의 희망의 빛을 함께 따라 가보자.<br/><br/>도1. 모악산 금산사가 새겨진 편액<br/>母岳山金山寺扁額<br/>조선후기<br/>169.0×110.0cm<br/>금산사 성보박물관<br/><br/>모악에 가다<br/>전북특별자치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평야가 있다. 드넒은 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큰 산, 이 산의 이름은 ‘모악母岳’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모악에서 1,400여년 전 금산사가 세워졌다. 프롤로그에서는 금산사 옛 금강문에 걸었던 옹혼한 서체의 모악산 금산사 편액도 1을 시작으로 모악이 품은 금산사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2과 지도를 만나본다. <br/>	<br/>도2. 모악별곡<br/>母岳別曲<br/>김범석(1964-)<br/>2004<br/>280.0×700.0cm<br/>전북특별자치도립미술관<br/><br/>자비로운 어머니 대자大慈의 땅, 미륵을 만나다<br/>석가모니가 구제하지 못한 미래의 중생들까지 모두 구원하려는 자비의 존재가 바로 미륵彌勒이다. 1부에서는 자비로운 어머니 대자의 땅에서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로 굳게 자리매김한 금산사를 소개한다. 금산사를 미륵신앙의 도량으로 만든 진표율사의 전기도 3와 관련 경전도 4은 참회와 수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던 진표스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혜덕왕사 소현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금산사는 대규모 가람을 이루게 되었고 호남의 중심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 <br/>	<br/>도3. 진표율사의 일생이 담긴 기록<br/>송고승전宋高僧傳<br/>찬녕贊寧(919-1002) <br/>일본 근대<br/>28.0×19.5cm<br/>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br/><br/>도4. 업보를 점찰하여 수행하는 방법이 기록된 경전<br/>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br/>지욱智旭(1599-1655)<br/>조선 1868년 <br/>24.5×15.5cm<br/>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br/><br/>도4. 임진왜란 의승장 뇌묵대사의 진영<br/>雷默大師處英眞影<br/>조선후기<br/>143.0×97.5cm<br/>원광대학교박물관<br/><br/>미륵불의 세계 용화龍華의 집, 금산을 이루다<br/>임지왜란이 일어나면서 조선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스님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의승군들의 활약으로 침체되었던 불교계의 위상은 다시 높아졌지만, 전쟁으로 인해 금산사를 포함한 많은 사찰들이 피해를 입었다. 금산사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미륵전과 미륵장륙상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다시 세웠다. 2부에서는 금산사에서 출가한 의승장 뇌묵대사 처영도 4의 이야기와 불굴의 의지와 강한 실천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용화의 집을 이룬 금산사의 모습도 5·6을 보여준다.  <br/>	<br/>도5. 모악산 금산사를 그린 그림<br/>母岳山金山寺圖<br/>허련(1808-1893) <br/>조선 19세기<br/>전북대학교박물관<br/><br/>도6. 금산사 재건 이후 모습을 보여주는 무경 자수의 글과 시<br/>無竟集<br/>무경 자수(1664-1737)<br/>조선 1738년<br/>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br/><br/>미륵彌勒의 마음, 세상을 보다<br/>미륵신앙의 성지로서 금산사 상징은 ‘방등계단方等戒壇’과 ‘미륵전彌勒殿’이다. 방등계단은 출가한 승려뿐만 아니라 출가하지 않은 신자에게도 계戒를 주는 곳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미륵의 자비심이 엿볼 수 있다. 3층의 미륵전과 높이 11m에 이르는 미륵장륙상은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설법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3부에서는 진표율사 때 처음 지어진 후 여러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금산사의 상징이 된 미륵전과 미륵장륙상을 소개한다. 특히 1935년 미륵장륙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진행된 입찰에 응모한 김복진의 불상도 7 이 선택된 것은 새로운 것을 과감히 수용하는 금산사의 혁신성을 보여준다.<br/>	<br/>도7. 조각가 김복진이 석고로 만든 불상<br/>石膏佛立像<br/>김복진(1901-1940)<br/>일제강점기 1935년 <br/>높이 102.0cm <br/>공주 신원사 소림원<br/>	<br/>이 세상의 도솔천<br/>금산사는 지금도 온 세상과 사람을 향한 수행과 실천으로 미륵신앙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찬란했던 순간도, 어려움과 슬픔의 시간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금산사가 일으키고 버티어 온 역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 된다. 그렇기에 금산사는 이미 미륵의 세상, 이 세상에 구현된 도솔천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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